학급이든 직장이든 어느 조직이든 그곳에는 조직을 대표하는 장이 있다. 그들은 능력에 의해 선출되기도 하고, 외모나 풍모, 인기 등 다양한 이유로 뽑히게 된다. 하지만 성적이나 자격증 같은 확실한 점수로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면, 한 가지 요인만으로 리더를 선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보다는 사람에게서 풍기는 어떤 ‘아우라’를 다반수의 사람들이 인정하고 합의하여 리더는 선출된다. 그렇게 뽑힌 리더는 과연 주어진 역할을 잘 감당해낼 수 있을까? 리더란 무엇을 결정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이 선거 장난은 소라만큼이나 모든 소년들의 마음에 들었다. 잭은 항의를 했으나 고함 소리는 대장을 선거하자는 의견에서 일치되었고 박수갈채로 랠프를 선출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아무도 설명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혜라고 할 수 있는 것을 보여 준 소년은 피기였으며, 누가 보나 지도자다운 점은 잭에게 있었다. 그러나 랠프에게는 앉아 있을 때 그를 드러나게 하는 조용함이 있었다. 몸집도 크고 매력 있는 풍채였다. 뿐만 아니라 가장 효과를 나타낸 것은 소라였다. 소라를 불고, 그 정교한 물건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높은 화강암 고대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존재-그것은 틀림없이 특이한 존재였다. - 본문 중에서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은 제 3차 대전을 배경으로, 전쟁을 피해 피난 가던 영국 소년들이 무인도에 불시착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무인도에서 한 자리에 모인 아이들은 어른들처럼 제일 먼저 대장을 뽑고, 의견을 한 데 모아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다. 그렇게 선출된 대장이 주인공 ‘랠프’다. 랠프는 소라를 불어 회합을 하고 의사결정을 한다. 아이들은 대장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고, 그의 지시에 따르고자 했다. 그의 지시는 구조되기 위해 ‘봉화를 피우는 일’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이들은 불을 피우는 일에 시들해졌다. 놀고 싶었고, 맛있는 것을 먹고 싶었다. 그 중 사냥을 좋아했던 잭은 멧돼지 사냥에 성공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고깃덩어리를 제공해주면서 갈등의 서막이 열린다. 잭이 랠프의 휘하를 벗어나고자 한 것이다. 그는 언제 될지도 모르는 구조를 위해 맷돼지 사냥을 포기할 수 없었다. 게다가 자신이 구해온 고기로 인해 모두가 배부르고 즐거워하지 않는가. 랠프 조차도 말이다.

결국 잭과 랠프를 필두로 두 조직이 생겨나고 만다. 잭의 일당은 사냥을 하면서 ‘죽인다는 것’에 대해 익숙해졌다. 권력이 세진 잭은 점점 포악해져 친구들을 고문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잭과 아이들은 섬 밖에서의 이성적인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고, 무인도에서 살아남기 위한 ‘야만적’ 모습만 남았다.

랠프도 점점 두려워졌다. 봉화 피우는 일에 자신이 없어졌고, 당장의 배고픔이 그를 지치게 했다. 랠프는 자신이 대장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랠프를 지탱해준 것은 그의 참모 피기와 성실한 일꾼 사이먼이었다. 피기는 지성적이었고, 사이먼은 묵묵히 자신의 일을 수행했다.

공격을 일삼는 잭의 일당에게 피기는 되묻는다. “어느 쪽이 좋겠어? 얼굴에 색칠한 검둥이처럼 행동하는 것과, 랠프같이 지각 있는 것과 말이야.”
야만인 패 사이에서 크게 야유의 함성이 퍼졌다. 피기는 다시 큰소리로 말했다. “규칙을 지키고 합심을 하는 것과 사냥질이나 하면서 살생을 하는 것, 어느 편이 더 좋겠냐?” 다시 함성이 터지고 휙 하는 소리가 났다. 시끄러운 함성에도 불구하고 랠프가 큰 소리로 말했다. “법을 지키고 구조되는 것과 사냥이나 하며 모든 걸 파괴하는 것 중 어느 쪽이 좋으냐?”
-본문 중에서


결국 피기와 사이먼마저 죽게 되고, 랠프를 잡기 위해 잭의 일당은 섬 전체를 불태울 계획까지 세우고야 만다. 그렇게 쫓고 쫓기며 섬 안을 휘젓고 다니던 중, 극적으로 해군의 구조대를 만나 이 모든 사건은 끝을 맺는다. 해군 장교는 물었다.

“대장은 누구지?”
랠프가 큰 소리로 말했다.
“내가 대장입니다.”
-본문 중에서


숱한 회의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신의 봉화가 옳았음을 깨달은 랠프는 마지막 장면에서 울음을 터뜨리며 ‘자신이 대장’임을 당당히 밝힌다. 피기와 사이먼의 희생이 있었고, 잭에게 장악되지 않으려는 랠프 자신의 몸부림이 있었다. 그렇게 랠프는 진짜 ‘대장’이 되었다. 반면 잭은 마지막에 대장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리더는 공동의 목적을 위해 일해야 한다. 이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극복해야 할 것이 많다. 각양각색의 구성원을 포용할 줄 알아야 하고, 적재적소에 필요한 구성원을 배치하며, 숱한 돌발 상황에서도 뚜렷한 목적의식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랠프처럼 생사를 오가는 상황을 겪으면서도 지켜내고자 하는 ‘목적’을 잃지 않을 때 진정한 리더로 ‘세워지는 것’이다.

『파리대왕』은 1983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이 책은 무인도에서의 모험담으로 예상되는 내용과는 달리, 13세 이하 아이들이 무인도에서 드러내는 잔인성을 그려낸 비관적 작품이다. 이는 아이들의 잔인성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전쟁으로 황폐해진 어른들의 세계를 대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