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동딸이라 어릴 때부터 웬만한 일은 다 저 하자는 대로 해주곤 했죠. 그래선지 지금도 무슨 일이나 자기 맘대로 안 되면 그 순간을 견디지 못하는 것 같아요.”
선영이 어머니의 말이었다.
“저 역시 엄마로서 과보호로 일관한 점도 있구요. 어느

엄마나 다 그렇겠지만 저도 선영이가 자라면서 맘에 작은 상처라도 입는 걸 원치 않았거든요. 그래서 가능한 한 아이를 보호해 주려고 했을 뿐인데 결국 제가 잘못한 걸까요? 남편하고 그 문제로 늘 다툼이 끊이지 않았거든요. 남편은 지금도 제가 아이를 잘못 키웠다고 하는데, 그런 말 들을 때마다 너무 속이 상하네요.”
그녀는 끝내 눈물을 떨구었다. 지금 그녀의 심정이 얼마나 비통할지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

자해나 오락, 도박, 술 등에 집착함으로써 스트레스 푸는 경향 강해

선영이와 면담을 했다. 머리도 좋고 똑똑한 학생이었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표현할 줄 알았다. 자기 문제가 뭔지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다. 선영이 말이, 자기는 무슨 일이든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그 순간 제정신이 아니게 이성을 잃는다고 했다. 평소에는 자기가 생각해도 그런 성격이 싫어서 참아야지 다짐하지만 막상 그 순간이 되면 자기도 모르게 욱해서 분노를 폭발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혼자 있는 게 못 견디게 싫다고 했다. 외롭고 마음이 공허해서 누군가가 꼭 곁에 있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러다 보니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자기를 싫어하는 눈치를 보이면 역시 그 순간을 견뎌내기가 힘들다고 했다. 자기도 모르게 상대방의 눈치를 몰래 살피게 되고 어느 순간 그런 자신이 싫어지면 스트레스가 걷잡을 수 없이 쌓이곤 했다. 그러면 이번에는 그런 긴장을 풀기 위해 만만한(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든지 다 받아준다는 점에서) 엄마를 괴롭히는 때가 자주 있다는 것이었다.
검사 결과 선영이는 경계선 인격장애란 진단이 나왔다. 그와 같은 증상을 가진 사람들은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충동적이며 혼자 있는 것을 못견디고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린다. 또한 선영이의 경우처럼 자해를 하거나 오락, 도박 술 등 뭔가에 집착함으로써 스트레스를 푸는 경향이 몹시 강하다.
그런 성격은 남의 주목을 받고자 하는 성향이 강한 자기애적 인격, 감정적인 양상을 보이기 쉬운 히스테리성 인격, 자기의 목적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것에 대해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와 더불어 한 군으로 분류한다. 그리고 실제로 임상에서 이 네 가지 양상이 섞인 사람들을 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임상에서 경계선 인격장애로 진단하는 기준은 대략 다음과 같다.

1)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크며 그 두려움으로 인해 자신이 먼저 상대방에게 반발하는 행동을 보일 때 가 많다.
2) 인간에 대한 평가가 수시로 극단적으로 달라지며 그로 인해 매우 불안정하고 격렬한 대인관계 양상을 보일 때가 많다.
3)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주체성의 불안을 보 인다.
4) 충동조절에 심한 어려움을 겪으며 과식이나 과소비 형태를 보이고 심하면 좀도둑질 같은 행동으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5) 되풀이해서 자해소동을 벌이거나 자살 위협을 반복한다.
6) 감정의 기복이 몹시 심하며 부적절한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고 쉽게 폭력적인 행동을 보인다.
7)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만성적인 공허감으로 인해 힘들어한다.
8) 스트레스가 심할 때는 일시적으로 망상적 사고를 보이거나 해리 증상을 나타내기도 한다.
위와 증상에서 다섯 가지 이상의 행동을 보일 때 경계선 인격장애로 분류한다.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타고나는 기질이다. 유전적 소인도 있다. 앞서 살펴본 선영이의 경우처럼 환경적인 요인도 작용한다. 외동으로 자라면서 부모가 지나치게 과잉보호로 일관할 경우에도 문제가 없지 않은 것이다. 그런 경우, 아이는 그것을 간섭이나 자신에 대한 침해로 받아들여 자신도 모르게 부모와 세상에 대해 적대적이 되거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 방편으로 삼기도 한다. 선영이의 예에서 보듯이 엄마를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기 위해 멋대로 행동하거나 자해 위협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남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할 때 자해하는 행동을 보인 것도 그렇게 함으로써 남자친구를 조종하려는 심리 때문이다. 경계선 인격장애의 특징 중 하나는 상대방이 오로지 자기만 바라보기를 원하다는 것이다. 만에 하나 다른 사람에게도 관심을 보이면 그것을 참지 못해 극단적인 행동을 보인다.

치료방법은 약물과 상담치료 병행

경쟁적인 사회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경계선 인격장애의 한 원인이 된다. 무슨 일이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기질을 가진 사람들에게 치열한 경쟁사회는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스트레스다. 그래선지 요즘은 젊은이들 사이에 이 경계선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 사회적으로 고민해 볼 문제다.
치료방법은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병행한다. 약물치료의 경우, 충동성을 억제하는데 도움을 준다. 상담을 통해서는 자기 자신의 성격에 대한 통찰력을 키움으로써 증상을 완화해 나가는 데 크게 도움을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