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이 되었다. 얼굴도 모르는 1학년 학생이었는데, 사유가 결손가족이었다.
담임에게 알아보니 그 학생이 학교생활을 원만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업도 들어가지 않는 내가 그 학생을 느닷없이 불러서 상담을 한다면
그 학생은 얼마나 놀랄까. 자칫 결손가정 자녀는 문제아란 인식을
심어 줄 수도 있겠고, 열심히 살려고 하는 의지를 오히려 좌절시키는
게 아닐까 염려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저 멀찌감치 그 학생의
얼굴만 보고 왔던 적이 있다.
문득 오래 전 내가 담임을 하였던 두 여학생을 떠올렸다. H시 외곽의
여학교에 있었을 때였다. 내 반 소희(가명)가 여러 날 가출을 하는
바람에 부모를 학교에 오게 하였다. 소희 부모는 부부가 같이 학교에
왔다. 그 내외가 화목해 보여서 가정에는 문제가 없겠다 싶었는데,
소희 어머니가 소희는 자기가 낳은 딸이 아니라고 하면서 죄인처럼
고개를 떨구었다.
결국 소희가 서울의 고모집에 살면서 모 여자상업고등
학교 다니기로 하고 전학을 가던 날, 나는 소희에게 좀 나무랐다.
사별한 친모 대신 새어머니가 2살 때부터 소희를 길렀는데, 그런
어머니를 밀어낸다면 나쁜 일이라고. 그랬더니 소희는 새어머니한테
나쁜 감정은 없는데 그저 마음이 그렇다고 했다.
하기야 지금도 텔레비전에서는 어느 방송사랄 것도 없이, 출생의
비밀을 테마로 하는 비슷비슷한 연속극만 내놓고 있으니, 10년
전이나 21세기가 된 지금이나 우리들이 혈연에 끈끈하게 집착하는
인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한창 감수성이
예민할 때인 소희 같은 여학생들이, 머리로는 이성적으로 생각을
할지는 모르지만 가슴으로는 결손가정이란 외로움과 소외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 이듬해 나는 근처 다른 여학교로 전근을 갔다. 내 반의
소녀 가장인 현아(가명)가 할머니 상을 당하여 가정방문을 하게
되었다. 반 학생 몇을 데리고 시내를 벗어나서 논두렁길을 꼬불꼬불
지나서야 현아네 집을 찾게 되었다. 그 집은 보기 드물게 초가지붕이었는데
솜씨 좋게 새 이엉이 이어져 있었다. 중풍이 든 할머니와 남동생
그리고 현아 셋이 사는 집이라고는 생각되지 않게 깔끔했다. 사립문을
들어서다가 나는 소희 부모와 맞닥뜨렸다. 두 사람도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소희 아버지가 머리에 두건을 쓰고 있어서, 현아와
소희네가 친척이 되는지를 물었다.
“현아는 제 딸입니다.”
손님 상을 봐오면서 소희 어머니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녀는 운전수 일을 하던 전 남편이 사망하자, 남편 친구인 소희
아버지와 재혼을 했다. 바로 뒷집이라면서 턱으로 집을 가리키는데,
그제서야 두 집의 이엉 솜씨가 같은 것을 알아차렸다. 두 집에는
다 고만고만한 애들이 둘씩 있어서 소희 어머니는 양쪽 집을 오가면서
애들을
보살폈고, 현아 할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지자 지금까지 시어머니의
수발을 들어왔다는 것이다.
“소희는 여상을 졸업하고 올 봄에 취직을 했어요.”
내가 소희를 걱정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지 소희 어머니는 그렇게
말했다. 소희가 전화도 자주 해주고 전과 많이 달라졌다고 환하게
웃었다.
두 딸들이 사춘기에 접어들었을 때, 친딸인 현아는 한 살 위인
소희를 ‘언니’라고 부르며 따르는데, 소희는 맘을 터놓지 않고
학교생활도 점점 옆길로 나가더라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친모가
개가해 가버린 현아 쪽이 더 힘들었을 것 같았는데, 어린아이일수록
어머니의 부재감이 더 심각하다고 하더니 어머니와 사별한 소희가
더 외로웠던 모양이다.
참 이상한 집안이라고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 그
가족들은 참 편안하게 보였다. 소희아버지가 당당하게 머리에 두건을
쓰고 아내의 옛 시어머니상을 열심히 돕고 있는 것만 봐도 그랬다.
그렇게 된 것은 바로, 그날의 맏상제인 현아의 큰아버지가 노력한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현아의 큰아버지가 존경스러웠다.
그분과는 이미 안면이 있었다. 학기 초 학교에서 불우이웃돕기
성금이 걷혔을 때, 소녀가장인 현아가 대상자로 선정이 되었다.
바로 다음 날 나는 현아 큰아버지에게 전화를 받고 그분을 만났다.
현아 큰아버지는 그 지역 공무원이었는데, 가족은 타지에 있어
매일 원거리를 출퇴근했다. 일주일에 한 번 꼴로는 모친도 뵐
겸 현아 남매의 공부도 봐주면서 그 집에서 자고 아침에 회사로
출근을 한다고 했다.
“제가 어떻게든 현아 남매를 거둘 테니까 학교에서 보조금을 받지
않게 해주십시오. 당당하게 자라게 하고 싶어요.”
그러면서 찻값을 지불하려고 일어서는 그분의 바지호주머니가 헤실헤실
닳아져 있던 것과 낡은 가죽가방이 내 눈에 띄었다.
할머니 상을 치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현아가 이사를 하기
때문에 조퇴를 하겠다고 왔다. “큰아버지가 시내에다 아파트를
사주셨어요.” 하고 좋아라 했다. 평소 조용한 성격인 현아가
소리치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한 것은, 학교 가까이에서 살게 된
일보다 어머니와 한 집에서 살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새아버지가
생겼네. 소희 언니와도 잘 지내라.” 그리고 진심으로 나는 다음
말을 덧붙였다. “네 주변에는 널 사랑해주는 사람이 이렇게 많으니
넌 참 행복한 사람이다.”
현아는 자기도 그걸 안다면서 해맑게 웃었다. 현아의 표정이 어둡지
않았던 것은 현아의 주변에는 서로를 이해하면서 현아를 아껴주는
어른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 겉으로는 소녀가장이었지만
현아 남매는 보통 아이들처럼 안정된 정서를 가지고 성장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현아처럼 복잡한 가정을 가지고도 안정되게 사는 학생이 있기 때문에
나는 결손가정의 자녀에게 섣불리 편견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
